책.이렇게 다가오다

눈먼 자들의 도시

초콜렛맘 2020. 7. 24. 18:43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윤지야, 진짜 눈이 멀었어, 사람들이."

"정말? 무슨 은유가 아니고?"

이리 매치고 저리 매치면서 돌려 돌려 말하는 작품들에게서 학습된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말이 안 되는 제목이라고 생각한 탓인지 눈이 먼 사람들이 등장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작가가 눈먼 사람들을 통해 현대 사람들의 윤리 의식 부재 등을 나타내려고 했다는 것을 유추하더라도

주인공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눈을 멀게 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렸다. 눈이 머는.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더러워서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중간까지 읽었을 때 마음이 너무 무거원서 이 책을 먼저 읽은 아들에게 해피엔딩이냐고 물어보는 참사를 저질렀다.

해피엔딩이 아니면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에 행복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의 결말이 행복하지 않으면

코로나도 왠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아들이 "해피엔딩이야"라고 명쾌하지만은 않은 목소리라도 말해줬기 망정이지 아니면 책을 덮었을 것이다.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 생활.

화장실과 복도, 건물 곳곳이 오물이 뒹글고

걷고 길 때마다 뭉클한 것이 달라붙어 질척거리고.

머리에 총을 맞은 사람을 묻어줘야 하고

비릿한 핏물이 흥건한 복도를 지나가야 하고...

작가가 묘사한 대로 상상하는 내 뇌를 나도 어찌하지 못해 같이 토할 것만 같았다.

똑같은 처지지만 수용소에서도 약육강식은 존재한다.

한 자루의 총에 굴복해 그 사람을 따르는 소수의 깡패(?) 집단.

자기들 것도 아닌 정부에서 나눠주는 식사를 미끼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여자들의 몸을 요구한다. 배고픔에 어쩔 수 없이 집단 강간을 당하는 여자들.

매스껍다. 더러운 욕정들. 

씻지도 못하고 더러운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악취가 풍기는 그곳에서 나 또한 한시라고 빨리 벗어나고 싶어

그들이 수용소를 탈출 했을 때 같이 기쁨을 누렸지만

도시의 더러운, 처참한 풍경은 계속 묘사된다. 도시 전체가 전염병에 걸렸던 것이다.

시체를 먹는 개들, 생고기를 먹는 할머니,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눈먼 자들.

전염 수준이 코로나 못지않다. 접촉자들은 죄다 걸리고 정부에서는 접촉자를 신속하게 격리했지만

전파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도시는붕괴됐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의사 부인은 눈이 멀지 않는다.

눈먼 사람들 속에서 모든 것을 목격해야 했던 한 사람,

너무 힘들고 괴로워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었으면 하는 바람도 문득문득 하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고 슬기롭게 눈먼 자들을 끝까지 보살핀다.

눈이 먼 특별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의사 부인이 왜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은 특별한 치료 없이 어느 날 눈은 다시 보이게 된다.

 

세상을 참되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병이

그들을 눈 멀게 했으나

고난의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인간의 참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니 다시 눈이 보이게 된 것일까?

의사 부인은 마음속에 인간의 윤리를 잘 잡고 있어서 눈이 멀지 않은 걸까?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고 했던 의사 부인의 말처럼

겉과 속이 달라서 눈이 멀게 되었고 그래서 검정이 아닌  백색에 갇혀 지냈던 것일까?

이 소설에는 사람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 눈먼 사람, 안과 의사, 의사 부인 등등 이런 식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쨌든 읽기는 편했다.  눈에 익지 않은 외국어 이름을 외우면서 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많이 나오는데

대화글에서 줄 바꾸기나 큰따옴표 등은 나오지 않는다.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스타일이라고 한다.

문장 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 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라고 한다.(김용재, 부산외대 포르투갈어과 교수 말 인용)

작가의 약력을 쭉 보다 보니 "눈뜬 자들의 도시"가 눈에 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으니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