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블랙)코미디, 12세 이상 관람가, 103분, 1998년
짐 캐리(트루먼 버뱅크), 로라 리니(한나 길, 메릴 버뱅크) 노아 엠머리히(말론), 에드 해리스(크리스토프)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10909일,
숫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365일로 나눠본다. 숫자가 나오면 이리저리 계산을 해 봐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초가 나오면 분으로 계산해보고 시간이 나오면 분으로 계산해보고 출생년도가 나오면 지금 몇 살인지 계산해 보고...
어쨋든 10909일은 29.89년, 약 30년이라고 치자.
무엇을 말하고 있는 숫자일까?
평범한 보험 회사 직원이고 결혼은 했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떠나고 싶다'라는 마음을 항상 품고 다니는
트루먼이 살아온 날들이다.
10909일.
영화가 시작 될 때 나오는 이 숫자는 트루먼 쇼가 시작된 지 10909일 째라는 의미도 된다.
트루먼 쇼란 트루먼이 나와서 말 그대로 춤을 추고 장구 치고 하는 쇼가 아니라
트루먼 개인의 평범한 일상을 매일매일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트루먼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24시간, 오천대의 카메라로 트루먼의 생활이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방송이 된다.
트루먼은 달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씨 헤이븐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고 그 안은 바깥 세상과 똑같이 꾸며져 있다.
해, 달, 바다, 바람 등이 때가 되면 뜨고 지고 불고 내린다. 바다도 있고 언덕도 있다. 병원도 있고 마트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똑같다. 씨 헤이븐은 작은 지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만 모두 가짜이다.
당신 주위를 둘러보세요. 모두 진짜인가요?
트루먼의 이웃, 친구 등 씨 헤이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기자이다. 경찰, 버스 드라이버, 지나가는 행인 등등 모두가. 트루먼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가짜 인 것이다. 심지어 아내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트루먼만 진짜다.
자신의 생활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트루먼만 자신에게 주워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영화 초반에 트루먼의 아내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개인 생활이 사회생활과 다를 게 없다고 한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모두들 감쪽같이 트루먼을 속인다. 속인다는 것을 넘어서 기만하고 이용한다.
쇼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이 광고이다. 트루먼이 먹는 음식, 옷, 가구 등 보이는 모든 것이 광고 상품이다.
그렇기에 쌍둥이 형제는 커다란 광고판이 있는 똑같은 장소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투루먼을 만나 광고판이 텔레비젼에 잘 보일 수 있도록 트루먼을 광고판 앞에 밀쳐 세우고 대화를 한다. 부부 싸움 도중에도 아내는 상품을 선전하는 대사를 말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내 안에 있는 생각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나요? 모든 것이 내가 만든 내 생각인가요?
크리스토프 감독은 트루먼 쇼가 시나리오도 없는 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날씨, 환경, 음악, 대본 등 모든 것을 지시한다.
탐험가가 꿈인 트루먼의 탐험심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트루먼의 아빠를 바다에서 죽여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다. 심지어 초등학교 선생님은 "모든 곳을 탐험해서 이제 탐험할 곳이 없어요."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선생님도 배우라 정해진 대사를 했다곤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트루먼에게 꿈을 짓밟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단호하게 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었고 선생님의 말에 실망하는 트루먼이 정말 불쌍했다. 씨 헤이븐을 떠날까 봐 그 곳을 떠나지 못하게 이런저런 공포심을 어렸을 때 부터 주입시키고 첫사랑을 찾아 떠나려는 트루먼을 막기위해 죽었던 아빠를 다시 살려내기도 한다. 결혼도 감독이 짜 준 각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연기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트루먼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감독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감독은 트루먼이 아이를 낳기를 바란다. 아이가 있으면 씨 헤븐을 떠나지 못 할 것이고 그 아이를 제 2의 트루먼으로 삼아 더 많은 돈을 벌려는 목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제 2의 트루먼에 대한 감독의 포부가 나오지 않지만 삭제된 장면이라 한다.) 트루먼을 사랑하지 않는 연기자가 아이까지 낳아야 된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다른 연기자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얼마나 큰 보상이 있길래 아내는 죽을 때까지 헤어나지 못하는 계약을 한 것일까?
아무리 큰 보상을 준다해도 자기의 인생을 걸만한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트루먼은 뱃 속에 있을 때부터 텔레비젼 쇼에 나왔다. 초음파영상이 방영되고 가짜 엄마, 가짜 아빠가 그를 키우고
가짜 친구와 학교생활을 하고 가짜 이웃과 생활을 한다. 철걸음마, 첫사랑과의 키스 등 모든 것을 전세계와 공유했다.
방송국이 입양한 아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다섯 명의 후보 아이들이 있었는데 트루먼이 선택된 이유도 특별하지 않고 단순하다. 방송일에 맞추어 나왔기 때문이다.
감독은 트루먼이 자기의 삶을 의심하지 않았기때문에 자기 세상이 가짜라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정교하게 짜여진 속임수에서 트루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의심해야 할까?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소인국에서(잘 생각이 안남, 어느 나라였는지) 제일 중죄로 다스리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남을 작정하고 속이는 것이 상해를 입히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과연 트루먼은 자기 삶을 의심할 수 있었을까? 그의 머릿속이 온통 지배당하고 있는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다. 당신은 무엇을 깨고 나오고 싶은가요?
우연히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흘러나온 방송국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트루먼은 자기의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세계를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떠나야겠다는 트루먼의 의지는 활활 타오른다. 특히 결혼 사진 속 자기 아내의 손가락 사인을 보고 결심을 굳힌다. '행운을 빈다' 라는 손가락 사인을 밑으로 하면 '거짓'ㅇ을 나타낸다고 한다. 즉 '결혼식이 가짜라는 것을 알죠?' 라고 하는 사인을 아내가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탈출시도는 실패했지만 두번째는 성공한다. 콜롬부스가 항해를 할 때 탔던 배의 이름과 같은 산타마라아호를 타고 바다로를 통해 나가게 된다. 아무도 트루먼이 배를 타고 탈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진실을 향한 트루먼의 의지가 강력한 트라우마를 그 스스로 극복하게 만든 것이다. 감독이 설정한 집채만한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수평선이라고 알고 있었던 가짜 그림벽 앞에서 투르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독과 만난다. 목소리만으로.
트루먼이 없으면 모든 사람들이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트루먼을 붙잡으려했지만 자유와 사랑을 향한 그의 마음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꿈을 탐험가로 설정한 것도 아마 결말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누구인가요?"
"너는 스타야, 뭐라고 말 좀 해!"
트루먼은 평소 자기가 이웃들에게 했던 인사말을 하고 문으로 사라진다.
누가 투르먼을 희생양으로 만들었을까?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일까?
트루먼의 방송이 중단되자마자 시청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채널을 찾아 돌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있음에도 그들에게는 한편의 드라마를 본 것과 다를 게 없다.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가해자는 시청자들이라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인권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고
시청률이 낮으면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트루먼과 30년을 같이 한 연기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이야말고 씨 해이븐안에서 내가 아닌 가짜 삶을 살았고 그들도 피해자라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댓가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들도 불쌍하다.
연기자이건 시청자이건 양심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누군가 나의 생활을 엿보고 있고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트루먼 증후군이라고 한다.
주위의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주체적인 내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안의 생각은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일까? 온전히? 아니면 반만?
혹시 모르지 않나.
이 지구 또한 거대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지.
그 안에 살고있는 모두도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을지..